제작 스토리

수리(修理)이야기
10만개의 「골프인생」과 함께 한 장인

「사람의 인생은 얼굴에 나타난다」라고 하는 말이 있다.

조금 과장된 표현일지 모르지만 「골프 인생도 골프 클럽에 나타난다」라고 혼마 골프에서 33년간 수리를 담당해 온 와카스기 스스므(Susumu Wakasugi)는 말한다. 그립 잡는 방법, 볼을 날리는 방법, 유지 방법…. 그런 골퍼 한사람 한사람의 버릇이나 경향이, 골프 클럽을 손에 넣은 그 날부터, 역사로서 새겨져 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퍼시몬 우드의 전성기.

목제의 퍼시몬의 솔 부분이 많이 깍여있고, 금속 부분이 튀어나온 드라이버를 수리 한 적이 있다. 아마 이 드라이버 수리를 맡긴 사람은 힐을 땅에 대고 치는 버릇이 있기 때문에 헤드가 열려 있는 상태에서 똑바로 치려고 클럽 헤드를 일부러 닫아서 볼을 치려고 했을 것이다. 국민성도 그 하나. 한국 골퍼의 상당수는, 연습에 열심이며 파워가 있다. 그 때문에 골프 클럽이 일본의 골퍼보다 비교적 빨리 닳고, 헤드나 샤프트의 교환 의뢰가 많다.

현재 사카타 공장에 상주하고 있는 수리 담당자는 14명. 1주일에 200개가 넘는 클럽을 수리 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 대리점내에 수리실이 개설되어 해외 전개도 시작되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수리는 수리가 아니다」라고 와카스기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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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괜찮겠지 라고 생각해서 마음대로 고쳐서는 안 된다.

수리는 「전부 교환」이 아니고 「현상 복귀」인 것이다. 골퍼의 손에 친숙해 있는 골프 클럽은 타인에게는 조정이 필요해도 당사자에게 있어서는 무엇과도 대신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서 어드바이스를 하는 일은 있어도 고객의 요망에 충실히 고치는, 그것이 와카스기 수리 팀의 방침이다.

그런 사카타 공장 수리 팀의 변천을, 와카스기가 입사 한 당시로 되돌아가 발자취를 되새겨본다.

1973년, 와카스기는 혼마 골프에 입사해 지금은 최고참 중의 한 명이다. 당시는 카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츠루미구에 있는 종업원 100명이 안 되는 제작소에서 휴일에는 모두가 같이 여행 다니는 가정적인 직장이었다. 동년, 일본 경제는 제1차 오일 쇼크를 거쳐서, 고도 성장에서 안정 성장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사회인의 첫월급은 5만엔 정도. 그런 중에 혼마 골프가 제조하는 풀 세트 16만엔의 골프 클럽이 날개 돋힌 듯 팔려 나갔다. 와카스기에 있어서는 꿈과 같은 시대였다.

당시의 수리 담당자는 와카스기를 포함해 5명. 말단 사원인 와카스기가 맡은 일은, 샤프트의 그립 부분에 가죽을 감는 「가죽 감기」라고 하는 작업이었다. 고무 그립이 아직 주류가 아닌 시대의 그립 교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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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샤프트에서 카본 샤프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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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스기가 입사해 얼마 되지 않은 70년대 중반, HONMA의 샤프트의 주류는 스틸 샤프트로부터 카본 샤프트로 변했다.

스틸 샤프트란, 그 이름과 같이 「강철」로 만들어진 샤프트이다. 샤프트 교환 시에 호젤 부분을 어느 정도 가열해도, 샤프트는 변형되지 않고 접착제만 녹는다. 이 때문에, 스틸 샤프트는 헤드로부터 몇번이고 분리 가능하며「재이용」이 가능했다.

70년대 중반, 츠루미의 공방에서 처음으로 카본 샤프트가 제조된 날, 와카스기 수리 팀은 카본 샤프트를 장착한 퍼스몬 우드를 처음 보았다.

와카스기팀에 맡겨진 과제는 카본으로 만들어진 이 샤프트를 퍼시몬 헤드를 손상시키지 않고 분리시키는 방법. 이것이 가능하지 않으면 수리나 샤프트 교환를 할 수 없게된다.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하는 조건이었다.

샤프트를 형성하는 카본 섬유는 숯으로 만든 섬유이다. 스틸과 달라 열에는 약하다.

게다가 카본을 싸는 수지는 가열하면 녹는다. 스틸과 같이 가열해서 분리시키는 것은 무리였다.

와카스기 수리팀은 우선 헤드 끝부분부터 샤프트를 절단 했다. 퍼시몬 헤드에 남겨진 것은, 샤프트용 구멍과 그 내부를 둘러싸듯이 붙은 텅빈 카본 샤프트였다. 와카스기 수리팀은 그 구멍에 들어가는 굵기의 철봉을 새빨갛게 가열해 살그머니 그 구멍에 넣었다. 접착제와 수지는 녹고, 카본은 부지지하고 타 갔다. 붙어있던 샤프트의 나머지도 축소 변형되었다. 그리고 넣은채로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퍼시몬의 구멍으로부터 나무 타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퍼시몬을 태워서는 상품이 되지 않는다.

해결 방법을 찾아내기가 어려웠다. 시행 착오 끝, 탄 철봉을 3회 정도 재빠르게 구멍에 넣으면 적당하게 샤프트가 변형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은 퍼시몬 헤드를 손상시키지 않고 샤프트로부터 분리하는 방법이다. 변형되어 구멍으로부터 나온 샤프트의 끝을 바이스에 끼워 , 양손으로 헤드를 들고 힘을 줘서 뽑아 냈다. 단번에 뽑아 내지 않으면 넥에 샤프트가 뜯어져 남아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힘이 너무 세면 헤드가 깨질 위험이 있다. 스틸 시대에는 비교적 간단했던 샤프트 교환이 갑자기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당시의 츠루미 제작소에 있던 수리사는 10 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들은 향후 일대 붐을 일으키게 되는 이 카본 샤프트의 샤프트 교환을 모두 실시하게 된다. 스틸 시대에 비해 1개를 교환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2배 이상. 오버홀과 로프트 조정도 포함해 대응할 수 있는 클럽은 팀 전체로 1일 20개에서 30개였다.

수리실은 연일 야근으로 계속 대응 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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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몬의 전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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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마 골프는, 영어로 「감나무」을 의미하는 퍼시몬 우드로, 성공에의 계단을 단번에 올라왔다.

와카스기가 입사한 당시에는 겨우 세 자리수가 된 종업원수가 어느새인가 수백명의 규모가 되어, 82년에는 야마가타현 사카타시에의 제조•수리 부문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현공장장 아베(Naoki Abe)나 현연마 책임자 도이(Yutaka Doi)와 같이 현지에서도 기술자가 다수 채용되었다.

퍼시몬 시대에는 소재의 질감이나 연마의 미묘한 차이에 따라, 그 하나 하나가 달라졌다. 「그 무렵은 제조, 수리기술의 수준은 낮았지만, 자신의 팔하나로 어떻게든 조정할 수 있었던 시대였어요」라고 와카스기는 말한다. 섬세한 방향성, 로프트각, 형상의 조정은 페이스의 연마작업이나 납을 넣어서 조정했다. 1mm 이하로 얇게 깎여져도 「클럽이 바뀌었다」라고 말해지는 일이 있었다. 이러한 수리는 장인의 기술을 극도로 높여 놓았다..

당시의 혼마 골프의 퍼시몬 인기를 실감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어느 일본 유명 프로 골퍼가 자기가 좋아하는 퍼시몬 클럽을, 시합이 끝날 때마다 샤프트 교환을 부탁했다 .

1970년대 후반, 페이스의 표면이 종이 섬유 였을 경우 페이스 교환 시에 간단하게 벗겨졌지만 카본으로 바뀌면서 페이스 교환시 납땜작업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페이스를 붙인 후에 「톱」으로 스코어 라인을 넣을 때도 소재의 딱딱함을 느낄 수 있었다. 단지, 교환의 빈도는 분명하게 줄어 들었다.

90년대, 우드의 소재가 퍼시몬에서 메탈로 바뀌면서 팔하나로 뭐든지 조정할 수 있었던 시대는 단번에 변화를 초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드에 웨이트 나사의 길이와 무게를 바꾸며 밸런스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자사 공장을 가지고 있는 혼마만이 가능한 방법을 연구해 냈다.

그러나 와카스기 수리 팀은 큰 전환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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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에서 새로운 영역으로

2004년, 혼마 골프 점포에 「탄도 측정기」가 도입되었다.

시타실에서 볼을 날리는 것만으로 임펙트 직후의 각도, 헤드 스피드, 스핀량등을 측정할 수 있고 이러한 데이터를 근거로 탄도의 방향이나 비거리를 계산 할 수 있다. 골프 클럽 선택에 있어서는 베테랑 판매사원의 어바이스에 탄도 측정기에 의한 과학적인 분석을 더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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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혼마 골프에서는 4 방향 카본을 채용한 혁신적인 샤프트 「ARMRQ」를 발매 한 바로 직후. 때마침 골프 업계에서는 샤프트교환, 피팅의 개념이 퍼지고 있었다.

「퍼시몬의 시대는 헤드를 깎아 조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메탈로 바뀌면서 조정할 수 있는 것은 주로 샤프트입니다」라고 와카스기는 말한다.

조정이 쉽지않은 헤드에 맞춰서 샤프트를 바꾼다, 그것을 위한 리샤프트의 보급은 기술혁신의 필연적인 흐름이었다. 와카스기 수리 팀은 90년대의 기교적인 수리사에서 고객의 요구에 맞은 리샤프트나 피팅에 대응할 수 있는 , 말하자면 「golf concierge (골프 관리자)」로 변해 갔다.

2005년의 BERES 발매로, 5 스타 그레이드에 완전 오더 메이드형의 생산체제 「five star couture」가 도입되었다.

와카스기 수리 팀과 영업 팀은 창업으로부터 반세기를 거쳐서 처음으로 전담 피팅 팀을 편성했다.

「five star couture」는 몇십개의 항목에 따라서 고객의 스윙이나 요망을 체크하며 퍼시몬 시대처럼 고객만의 골프 클럽을 제작한다. 와카스기도five star의 고객이 있는 곳에 찾아가 하나하나 항목을 체크하면서 고객과의 대화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수리 팀은 지금 세계적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넓여갈 것이다. 5월에 개설한 한국의 수리 실에는 사카타 공장의 수리 스탭이 1개월 교대로 상시 수리에 대응하고 있다. 이전에는 수리하는데 한달 이상 걸렸던 것이 지금은 최단 3일까지 단축하게 되었다. 홍콩에서도 요청에 따라 사카타 공장의 수리 스탭이 클럽의 수리 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해외고객에게 얼마나 짧은 시간내에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 이것이 와카스기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과제이다.

와카스기는 10만개의 「골프 인생」을 보며 느껴왔다.

그리고 그 자신의 「골프 인생」은 25년이라는 세월을 지나왔으며 앞으로도 보다 더 넓은 세계로 넓혀 나갈 것 이다.

(수리(修理)이야기 / 끝)

*소속이나 직함, 등장 인물 등은, 그 당시의 상황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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