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스토리

도금개발이야기
도금의 신(神)

여러분은 알고 있었습니까.

BERES MG701 시리즈의 캐비티에 도금한 색이 그레이드별로 다른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었습니까.

1 S는 그을린 은과 같은 흑색, 2 S는 흰색 비슷한 황색, 3 S는 핑크 골드, 4 S와 5 S는 선명한 금빛. 혼마 골프는 도금 가공을 내제화하고 있는 골프 메이커이며, 이러한 가공을 할 수 있는 것도, 그 특징을 최대한으로 살린 결과이다.

혼마 골프 사카타 공장에 「도금의 신」이라고 불리는 인물이 있다. 공장장 아베 나오키(Naoki Abe)다.

사카타 공장에서 도금 가공의 내제화가 시작했을 당시 책임자로서 초빙 된 것이 22년전. HONMA의 골프 클럽이 골프 클럽을 넘어서 「공예품」이라고 불리는 것은, 35년을 도금에 투자한 그의 연구 개발의 덕분이다.

아베와 도금 가공과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원래 기계 만지는 것을 좋아했던 아베는 고향의 야마가타현 츠루오카시에서 공업 고등학교를 졸업 후 동경에있는 버스 회사에 엔지니어로 취직했다. 당시는 관광 버스 전성기. 그 해에는 엔지니어들과 동경의 도시 생활을 만끽하고 있었다.

「예쁜 버스 가이드 아가씨도 많이 있고. 즐겁게 생활하고 있었어요」라고, 아베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데 상경해 수년 후, 츠루오카에 계시던 부모님으로부터 「시골로 돌아오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어떻게든 얼버무리며 넘어 갔지만, 몇년 후에 시골로 돌아가기로 했다. 츠루오카에서 전직 할 곳은 있을까? 도대체 어떤 회사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어느 도쿄의 양식기 메이커가 츠루오카에 공장을 건설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공장이 가동 될 때까지 동경에서 연수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지만 「마침 운 좋게」 전직 할 수 있었다.

양식기 메이커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가본 곳이 제조 공장이었다.

컨베이어에 의해 흰 접시가 순조롭게 액체에 담궈져 갔다. 액체에서 끌어 올려진 흰 접시에는 금빛으로 변해 있었다.

「왜 액체에 담근 것만으로 금빛으로 변한 걸까?」

엔지니어의 습성, 아베는 도금에 대한 탐구심을 유발했다. 그리고 2년간 낮에는 도금 공장에서 일하면서 야간에는 기술 학교에서 도금을 공부했다.

츠루오카에 공장 이전 후, 도금 공정의 책임자로 발탁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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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아베는 도금을 이용한 공예와 장식 기술을 배워 갔다.

양식기 메이커에 취직해 13년째 되던 해, 어느 골프 메이커로부터 돌연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 우리 공장에서 도금을 내제화 하기로 했으니, 책임자로서 꼭 와줬으면 좋겠다」

아베는 당시 37세. 취미로 골프도 시작하고 있었다. 골프 메이커의 공장은 츠루오카로부터 그다지 멀지 않은 사카타에 있었다. 아베는 그 골프 메이커를 방문했다. 공장에는 아직 도금 기재도 없고, 처음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언제부터 일할 수 있습니까?」

갑자기 제의를 받아 아베는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나 이 때도 역시 엔지니어로서의 탐구심과 호기심을 유발했다.

「회사에 얘기해 볼께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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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0)부터 시작하다

그 골프 메이커는 골프 클럽의 도금 기술에 혁신을 일으킨 혼마 골프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당시의 아베에게 주어진 것은 공장 부지에 있는「도금 공정 예비동」한동이었다. 거기에, 지금까지 외주를 줬던 도금 처리의 3배의 처리 능력을 가지는 설비를 제작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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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처리 능력으로부터 역으로 계산해 상정된 도금 처리 설비기의 크기는, 홀쭉한 욕조와 같은 것이 30개의 U자형으로 연결된 길이 20미터의 대규모 설비였다. 욕조와 비슷한 통은 도금 용액에 클럽 헤드를 담그기 위한 것이지만, 그 전후에 불순물을 씻어 내기 위한 통이 몇 개나 필요하게 된다. 통의 높이는 1.4m. 그 안에 1.2m의 봉이 5개, 각각 20개의 가지에 골프 클럽을 장착해서 담굼 작업을 시작한다. 빗을 거꾸로 한 것 같은 형태를 한 봉의 집합체는 공정 속에서 통에서 통으로 끌려 올라가 옮겨 가게된다. 즉, 공장에는 최소한 통의 높이와 봉의 높이의 합계보다 높은 천정이 필요했다. 거기에 봉을 끌어올리기 위한 모터도 필요하기 때문에 높이가 4m는 되야 했다

그러나, 주어진 동의 높이는 몇 십 센치 낮았다.

아베는 바닥을50cm 파고, 만약에 도금 용액이 통밖으로 흘러나와도 공정동 밖으로는 새지 않게 새로 만들었다 .

바닥을 판 곳에 장치를 넣어 드디어 시운전이다. 아베는 클럽 헤드를 봉에 장치해 도금의 전공정을 시작하게 하는 스위를 넣었다. 전공정이 완료될 때까지 약 2시간. 「어떤 결과를 낳을까•••」아베는 공장 주위를 몇번이나 돌면서 도금이 완성 될 때까지 기다렸다.

사카타 공장에서 최초의 도금 공정을 거친 클럽 헤드에는 얼룩이 져 있었다.

에지 부분을 제외하고 캐비티등의 복잡한 부분에는 도금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전류를 강하게 하면 좋아질까?」

아베는 다음에 도금 용액에 흐르는 전류를 강하게 해 재차 도금에 도전했다. 이번에는 에지 부분에 그을린 자국이 있었다.

「그럼, 전극과 전극의 사이를 가까이 해 보자」

통 안에 있는 전류가 흐르는 봉을 골프 클럽을 장착한 봉에 가능한 한 가까이 두었다. 골프 클럽을 장착한 봉은 5개, 1.2m의 높이에서 부터 내려 오기 때문에 통으로 들어가면서 약간의 흔들림이 생긴다. 아베는 부하들과 5개의 봉을 손으로 누르면서 가까워진 통 속의 전류봉에 닿지 않게 천천히 담그기 시작했다.

이 공정으로 도금을 완성 하게 되었다 . 그 후 아베는 흔들림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전류봉을 굵게 하는 작업을 거쳐 설비 조정을 완료시켰다.

상품화를 시키기 위해서는 한층 더 확인작업이 필요했다. 도금을 한 클럽 헤드의 호젤 부분을 꺾일 만큼 구부려 도금이 벗겨지지 않는 지 시험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압력에 도금은 벗겨져 나갔다.

「도금하기 전의 공정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아베는 도금 전에 세척작업을 정성껏 하게 되었다. 그 세척작업을 철저히 한 결과, 도금이 벗겨지지 않는 도금 공정이 만들어졌다.

「대량생산 체제가 개발 되었다•••!」

아베는 감격과 달성감에 넘쳤다. 그 당시 사카타로 부임한 지 4개월정도 지났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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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도금의 HONMA

세계의 골프 메이커 중에서 혼마 골프만이 가능 한 두가지가 있다. 골프 클럽 헤드에의 금 도금 작업이 그중 하나다.

자세히 말하면 내구성상 빠뜨릴 수 없는 크롬 도금 위에 금 도금을 더해 헤드를 대량생산 하는 기술이다. 골프 클럽을 스포츠 용품에서 공예품으로 발전시켜 골퍼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 HONMA의 금 도금도 수많은 시행 착오로를 경험함으로써 성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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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완성한 도금 작업동과는 다른 장소에서 아베는 계속 머물렀다 . 아이언 헤드가 흙 위나 벙커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크롬 도금에 어느 정도의 두께가 필요한가를, 블러스트 머신(세세한 모래를 내뿜는 기계)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었다. 타사의 아이언 헤드를 하나 하나 머신으로 실험 하였으며, 도금이 벗겨지는 시간을 재서 열심히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러가지 두께의 도금을 실험제작한 HONMA 클럽 헤드에도 모래를 내뿜고 도금이 벗겨질 때까지의 시간을 기록했다. 이러한 작업을 묵묵히 계속해 간신히 타사 상품 중에서 가장 내구성이 좋은 도금 보다도 훨씬 내구성이 좋은 도금 두께를 HONMA의 기준으로 했다.

아이언 도금은, 동, 니켈, 그리고 공기에 접하면 보호막으로 헤드를 지키는 크롬의 3층구조로 되어있다.

혼마 골프도 당초는 이 3층 도금의 아이언을 제조하고 있었다.

일본 경제는 그 다음 해의 프라자 합의를 계기로 급속한 엔고, 정부의 저금리 정책, 그리고 주식•토지 등 버블시대에 돌입했다. 시대의 흐름을 잘 파악하고 있던 창업자는 아베에게 「금 도금의 아이언 헤드」를 제조 하도록 했다. 그러나 크롬 도금은 보호막을 만드는 특성으로부터 기름이 물과 만나것 처럼, 그 위에 금 도금 하는것을 중지했다.

아베 도금의 상식으로는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술자로서의 프라이드가 있다. 아베는 문헌을 닥치는 대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더이상 무리라고 생각했을 무렵, 문득 손에 넣은 어느 팜플렛에 아베는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찾아냈다. 거기에는 「붓도금」이 소개되고 있었다.

붓도금이란, 봉에 붙은 펠트에 도금액을 담그어, 플러스의 전기를 펠트에 흘리는 한편, 마이너스의 전기를 도금 하는 측에 흘리고, 펠트를 몇번이나 문질러서 도금해 가는 방법이다. 이것은 크롬 도금을 한 헤드의 일부분을, 붓을 사용해서 산으로 녹여 그 위에 니켈 도금을 하고 한층 더 금 도금을 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붓도금은 사람의 손으로 하나하나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1개의 헤드에 금 도금을 하는데 20분은 걸린다. 신중함과 집중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하루에 한 명이 할수있는 양은 10개정도. 어떻게든 몇 사람이 생산해 왔지만 금 도금 클럽의 수요로 생산 능력은 높아져갔다.

「붓도금으로 대량생산도 가능 할 것이다.」

아베는 그렇게 확신하며, 연구실 구석에 작은 통를 설치하고 여러가지 산을 들여와 일하는 중간중간에 대량 생산 실험을 시작했다. 산의 농도를 바꾸고 혼합의 비율을 바꾸며 처리 시간을 바꾸어 모든 조합을 시험하면서 결과를 노트에 세세하게 기록했다. 상태가 좋은 것에는 블러스트 실험을 걸쳤지만 내구성이 좋지않았고, 크롬을 잘 나오게 하려고 산을 강하게 하면 얼룩이 져 있었다. 시행착오를 수개월간 거쳐서 간신히 산의 종류, 농도, 처리 시간의 절묘의 황금치를 찾아냈다.

「성공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과묵한 남자이지만 미소가 흘러넘쳤다.

「하루 수십개였던 생산량이 2,000개로 대량생산이 가능 해 졌어요.」

때는 1992년, 완전히 버블시대의 절정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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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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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혼마 골프는 국내 유명 프로 골퍼나 애슬리트를 중심으로 팬을 늘려, 1980년대는 버블을 틈타 부유층이나 비지니스맨을 중심으로 크게 늘려 나갔다.

혼마 골프의 기술력 덕분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교묘한 마케팅 전략도 일부을 담당하고 있었다.

우드는, 치는 것을 주저할 만큼 매끄럽게 연마 할 수 있던 퍼시몬를 고집했다. 아이언은, 금 도금의 대량 체제가 안정된 그 해, 별 마크( Star Mark)의 수에 의한 그레이드제를 도입했다. 아베는 양식기 메이커에서 갈고 닦은 공예 기술을 발휘해 그레이드별로 다른 금 도금을 실현시켜 나갔다. 그 아이언 「LB-280」은 거리를 내기 위해서 종래품보다 로프트를 세워 어드레스 시에도 위화감이 없게 브레이드를 깎음으로서 폭발적인 히트 상품이 되었다.

고성능의 아이언에 예술성이 더해져 당시의 고급차와 같이 five star가 날개 돋힌 듯 팔렸다. 비지니스맨들의 사이에 「언젠가는 HONMA」라고 하는 캐치프레이즈가 생겼다.

금 도금의 라인은 확장되어 풀 가동의 날들이 계속 되었다.

그러나 90년대 초반의 버블 붕괴의 영향은 수년의 시차를 거쳐, 골프 시장에 타격이왔다. 특히 고가격의 골프 클럽을 제조하는 혼마 골프에의 영향은 타사보다 컸다.

우선, 스텐레스 소재의 등장으로 퍼시몬 우드의 인기가 저하됐다. 혼마 골프는 타사보다 1년 늦게 우드를 스텐레스로 전환했지만 이미 시장의 구도는 변하고 있었다.

골프 클럽에의 수요 그 자체가 감소하며, 적정 가격의 신브랜드가 대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혼마 골프의 품질이나 평가가 약해진 것이 아니고 수요에 맞은 가격 전략을 취하면 반드시 팔렸다. 혼마 골프는 침체하는 시장의 기폭제로서 단속적으로 새로운 모델을 발표했다. 일본 경제의 「없어진 10년」 속에서 혼마 골프의 가격과 생산의 톱니바퀴는 서서히 부진을 초래하고 있었다.

혼마 골프의 하이그레이드 아이언의 수요는 국내에서 국외로 크게 이동했다. 1992년의 LB시리즈 발매를 기초로 한국이나 타이를 중심으로 하는 주변 아시아에서 인기를 끌었다.

국내 수요의 침체를 계기로 HONMA는 일본의 HONMA로부터 세계의 HONMA로 변모했다.

아베는 그 패러다임(paradigm) 전환의 파도 속에서 금 도금의 기술을 닦았다.

국내에서 선호하는 도금 장식이란 무엇인가.

해외에서는 어떨까. 혼마 독자적인 2Tone 컬러 도금이 빛나는 디자인은 무엇인가•••.

사카타 공장의 연구실 한쪽 구석에서 BERES가 희미하게 새로운 기운을 싹튀우기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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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도금기술을 추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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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의 도금만으로는 일본인은 싫증낼 수 있다」

기호의 변천이 빠른 일본인에게는 금빛의 도금만으로는 어딘가 부족한 날이 올 것임에 틀림없다. 아베는 그렇게 확신하며 일을 하면서 여러가지 색 도금 만들기에 착수하고 있었다.

도금은 이온화 된 금속을 흡착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메탈릭 칼라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중에서, 까만 것, 빨간것등 몇개의 종류를 만들어서 샘플로 보존해 놓았다.

2004년, 신브랜드 BERES의 발매가 정해졌다.

「Twin Marks」라고 하는 빅 브랜드로부터 심기 일전, 회사로서는 큰 모험을 한 것이다.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도금에 도전하고 싶다. 1 Star에서 5 Star까지의 도금의 색조를 바꾸어 보고 싶다.

사카타 공장의 개발담당들은 여성 패션잡지나 고급 브랜드 숍을 조사해 인기 브랜드 가방의 쇠장식, 벨트, 이어링, 반지의 색조를 조사해 갔다. 핑크 계, 골드계, 블랙계, 실버계가 인기의 주류였다.

이 4개의 색조에 맞은 도금액을 수십 종류 준비해 실험이 시작되었다. 동을 주성분으로 하는 도금이 아름다운 핑크 색을 냈지만 「10엔짜리 동전」과 같이 시간이 지나면서 변색되었다. 변색 방지를위해 톱코트(topcoat)를 바르면, 중요한 금속의 광택이 없어져 버렸다.

그 실험을 시작하고 3개월이 지났다.

24K금으로 골드계, 14K금으로 핑크 계, 니켈 합금으로 블랙계와 실버계의 색조를 내기로 정했다. 대량생산으로 들어 가면서 복잡한 투피스 구조로 표면적도 넓은 BERES의 캐비티에 색얼룩이 생겼다. 조속히 도금액의 성분 농도, 전류치, 온도, 섞는 조건등을 몇번이나 바꾸며 원인을 찾아내기위해 노력했다.

아베는 시험 결과를 대조하면서 원인을 찾아냈다. 색얼룩이 생긴 것은 24K금 이외의 합금 도금 뿐이었다.

합금 도금의 경우, 다른 금속을 혼합함으로써 각각의 용액에서 농도에 약간의 오차가 나온다. 이것을 가능한 한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답은 간단했다.

하지만 도금을 할 때마다 용액의 성분 분석과 조정을 실시하지 않으면 안되며 대량화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아베팀원들은 도금을 할 때마다 계속 데이터를 뽑아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정리했다. 놀라운 만큼의 미묘한 용액 농도의 변화가 색얼룩을 지게 하고 있는 것이 판명되어 거기에 대응해 도금 설비의 개조를 실시했다.

마지막에 백 페이스에 B마크의 에칭을 하면 BERES의 도금 개발은 완료. 도금에 인생의 반을 바친 아베의 기술 전부가 BERES에 함축되어 있다.

BERES 아이언을 갖게 되었을 때는 꼭 그레이드별의 색 차이와 아름다움을 확인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 금속의 색뒤에는 살아있는 사카타 장인의 피의 온기가 전해질 것이다.

(도금이야기 / 끝)

*소속이나 직함, 등장 인물 등은, 그 당시의 상황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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